공무원 ‘위법행위 당해도 기관 차원 대응 부족해’
국회입법조사처 “적극적 대응 현실화돼야 한다”

민원대응공무원. [뉴시스]
민원대응공무원.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학부모 갑질로 발생한 교사 사망사건 이후 한 달이 되지 않아 국세청 공무원이 악성민원인 응대 중 사망했다. 악성민원인에 대한 대응 및 공무원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는 설문조사 대상 1873명 중 1447명이 악성민원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 민원인을 고소·고발 조치한 경우는 39건 즉, 2%에 불과했다. 악성민원 종류는 폭언, 반복 전화, 인격모독, 성희롱, 상해협박 등으로 다양했으나,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폐쇄적 공무원 사회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으며, 국회입법조사처는 “적극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8월16일 국세청 경기 동화성세무서 공무원 민원봉사실장 A씨가 사망했다. A씨는 소리를 지르는 악성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실신했고,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끝내 숨졌다. 당시 민원인은 쓰러진 A씨에게 “쇼하지 말라”라며 조롱 섞인 발언을 일삼았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갑질 논란으로 교직 공무원 B씨가 사망한 지 한 달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서이초 교사 B씨도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악성민원’에 시달렸다. 이후 다른 교사들의 사망사건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7월24일 진행된 ‘교권 회복 방안 발표’ 자리에 참석한 한 남성은 “내 딸도 똑같이 죽었다. 같이 조사해 달라”라며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딸이 ‘교권 침해 문제’로 6개월 전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21년도 경기도 호원초등학교에서도 초임 교사가 학부모 항의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일이 알려졌다. 해당 교사의 휴대전화에는 사망 직전 부재중 전화와 숨진 직후에도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족 측이 공개한 녹취록으로 학부모가 교사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공무원 1873명 설문조사 실시, 폭언, 인격모독, ‘성희롱’까지 

지난 7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방자치단체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 실태와 개선과제’를 다룬 보고서를 통해 “2022년 10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민원처리 담당자의 보호에 관한 사항이 법률에 규정됐음에도, 특이민원이 사회 이슈화되고 있다”라며 “민원처리 담당자의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실제 행정현장인 지방자치단체에서 체감하는 특이민원 상황과 민원처리 담당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어느 정도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이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연맹’의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과 협력해 시·군·구 공무원 1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응답자 중 고소·고발 조치가 필요한 수준의 특이민원을 경험한 공무원은 1447명으로 77.3%였다. 그중 185명(9.9%)은 매주 고소·고발 조치가 필요할 정도의 특이민원을 경험했지만, 실제 민원인을 고소·고발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9건(2.0%)에 불과했다.

특이민원을 행태별로 분류하면, 폭언(88.9%), 반복 전화(85.8%), 장시간 전화(85.4%), 인격모독(80.8%)이 순위를 이뤘다. 특히 범법성이 높은 4개 특이민원의 경우, 성희롱(28.8%), 상해협박(45.8%), 신체에 대한 폭력(10.9%),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나 성추행(16.8%) 비율로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제공받는 보호장비·조치 “다수 曰 유용하지 않다” 

민원처리 담당 공무원들이 체감하는 보호장비·조치에 대해 조사한 결과 녹음전화(59.7%), 민원창구 투명 가림막(58.5%), CCTV(55.8%), 비상벨(48.3%), ARS음성안내(47.9%) 순으로 제공받고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민원창구투명 가림막, 민원인의 방문목적 외 사무실 출입 차단 시설 외의 장비·조치에 대해서는 제공받고 있더라도 유용하지 않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를 두고 “제공되고 있는 장비·조치의 사용 절차가 복잡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설문조사 내용 중에는 “상급자가 일을 커지게 만들기 원치 않거나 경찰이 별것 아닌 일로 출동했다고 타박을 놓는 등 문제가 있어 비상벨을 누르기 어렵다”와 “악성 민원인들은 민원응대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다. 또한 많은 공공기관에서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 조치 ARS 안내나 음성녹음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악성민원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아울러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와 관련된 제도와 현실적 문제점으로 여러 사항이 지적됐다.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 제도 전반에 대해 체감 제공률이 낮아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와 괴리가 있고, 제공받고 있는 경우에도 만족도가 낮다’와 ‘위법행위에 대해 기관 차원의 고소·고발 등 대응이 부족하다’ 등이 있다.

공무원 ‘기본적으로 보호되지만, 폐쇄적 분위기’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공무원도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공무원 사회가 폐쇄적이라 신고에 어려움이 있다”라며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도 적용이 안 되는 게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법적으로는 공무원도 민원인으로부터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다. 민원처리 담당자는 민원인의 폭언·폭행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반복민원 등이 발생하면 행정기관 장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의 예방 및 치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적극적 고소·고발 필요”

국회입법조사처가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를 위해 제도와 정책 측면의 개선과제를 제시한 바에 따르면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 장비·조치 수요를 면밀히 조사하고 실제로 보호 장비·조치를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특이민원인 고소·고발에 대한 기관 차원의 적극적 대응 필요성, 특이민원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 대응 전략 모색, 민원응대 매뉴얼·대응지침에 대한 홍보 강화 및 교육내용 현실화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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